EXHIBITION
Cognition
Cognition
2022.11.2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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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된 세계(projected world)를 살아가는 소비자. 오늘날 원본과 복제,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논하는 것은 예전만큼 치명적인 주제가 아니다. 연예인의 성형여 부에 대한 논란은 언젠가는 은퇴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이뻐졌으면 됐지 로 끝나는 신 변잡기가 되었다. 성형 후 얼마나 변했는지, 아름다워졌는지가 우리의 관심일 뿐이다. 사연에 따라 참가자를 선정, 성형을 해주는 케이블 프로그램인 렛미인(Let 美人)은 시즌4가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판을 까는 방송사, 방송의 컨텐츠인 참가자, 스폰서인 성형외과, 소비자인 시청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궁극의 방송콘텐츠로 여겨 지고 있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보도되는 여러가지 이슈들이 진실이라 믿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여지던 시기는 지났다. SBS, MBC, 종편채널인 조선TV와 JTBC의 뉴스를 비교해 볼 때 같은 사건 사고에 대한 내용전달은 같은 소스인가 의심이 될 정 도로 그 전달의 온도가 다르다. 흔히 조중동이라 불리우는 자칭 ‘보수언론’과 한겨례, 경향 등의 ‘진보언론’이라고 불리우는 신문간의 대립구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맛에 맞는 언론사를 취사선택해서 사건의 내용을 받아들이거나, 여러 방송에서 등장하는 주장들을 조합해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사실을 만든다. 이는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SNS가 발 달하고 이 새로운 채널을 통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또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알려져있는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주장대로 매체에 따라 전달되는 내용은 달라진 다. 같은 내용이라도 신문에서 다루어졌는가, 트위터에서 다루어졌는가라던지, 말로 전해지거나 편지로 전해지는 것에 따 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은 분명 다르다. 그렇다. 해석이다. 오늘날의 세상을 우리는 견고한 세상을 지각, 수용하기보다 는 해석으로써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 노세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견고함을 끊임없이 흔들며 우리의 세계에 대한 지각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다. 시리즈는 과일과 야채와 같은 다양한 자연물, 혹은 신발이나 의자와 같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들이 제목의 의미처럼 마치 녹아내리는듯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드러낸다. 각 사물들은 흰색 공간을 부유하듯 떠 있으며 사물 의 흰색 표면은 마치 컴퓨터로 렌더링한 듯 반짝이는 윤기를 내보이며 그 사물이 녹아내리듯 뚝 뚝 방울져 흘러내리는 것 처럼 보인다. 이렇게 유도되는 대상의 상태에 대한 관람자의 지각은 사실 양방향성을 띌 수 있다. 이 과정은 녹는 과정일 수 있지만 굳는 과정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사진은 그 사이의 한 순간을 고정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이다. 녹는 것과 굳는 것. 조금 더 부연설명을 붙여보자. ’과일이’ 녹는 것과 ‘과일에 칠해진 페인트’가 굳는 것. 변화의 대상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이 비현실적인 이미지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이 된다. 시리즈에서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장면 접시와 단무지 접시들을 화이트큐브라는 정제된 환경의 힘을 빌어 ‘백자’로 둔갑시킨다. 이렇듯 작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의식적, 무의식적인 영향을 통해 변화하는 지각의 모습들을 재치있게 제시하고 우리의 인식의 과정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 중 ‘민감함(sensitivity)’에 주목한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민감함 은 사람마다 다른 개개인의 취향이나 특성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에 의해 조성되는 교육된 민감함이다. 현재 세상을 작동시 키는 거의 유일한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는 생산-소비, 그리고 이 순환의 규모를 확대함을 근간으로 한다. 즉 오늘날은 ‘대 량생산 - 대량소비’의 사회이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의 2부 소비의 이론에서 오늘날의 소비구 조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생산-소비 구조에서 상품들이 많이 생산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 이 풍요로움의 상태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생산-소비 규모의 확대는 시스템의 만족, 즉 생산명령에 따른 필요가 충족 될 뿐 이 안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의 필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 사회에서 풍요로움은 점점 물러나며 그 자 리를 차지하는 것은 희소성의 원리이다. 인간은 풍요로움의 기호만을 가지고 희소성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 아넣는다. 시스템은 이러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상품을 만 든다. 사람들은 결국 상대적인 결핍을 메꾸기 위해 더욱 소비에 집착한다. 이런 현대의 '차별화' 사회에서 모든 사회관계는 개인의 결핍감을 증대시킨다. 현대 사회에서 소유물은 다른 이의 소유물간의 관계를 통해 상대화되기 때문이다. 이제 차별 화를 더욱 확장시키기 위해 가격적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상품간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는 예민함이 미덕으로써 강조된 다. 와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맛을 느끼는 사람은, 커피의 원산지와 블랜딩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향과 맛을 아는 사람은, 사진과 회화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색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스마트한 사람이다. 패션과 취미잡지에서, 공중 파 드라마에서, SNS에서 이들은 일반인들과는 차별화되는 능력자로서 그려진다. 여기에서 더욱 벌어지는 그들과 나라는 간극에 대한 결핍감은 예민함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게 만든다. 이제 이를 위해 사용되는 재화와 상품은 낭비가 아니라 소 비가 된다. 소비는 구입하는 상품의 희소성과 스스로의 희소성을 위한 능동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오늘날의 세상에 대해 제목을 통해 직접적으로 관람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36개의 생수를 구분할 수 있는 미감을 믿는 오만함>은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36개의 미네랄워터 제품을 각각 똑같은 시험관에 채워 넣어 배치한 작품이다. 생수 혹은 미네랄워터 시장은 오늘날 다양한 제품들이 가장 치열하게 마케팅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 중 하나이다. 우리 주위에서 에비앙(evian), 아쿠아피나(Aquafina), 페리에(Perrie), 볼빅(Volvic), 보스워터(Voss water), 히타천령 수(日田天領水) 굳이 해외제품을 찾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제주, 강원, 동해, 금천 등 전국 각지에서 산출되는 온갖 무기물을 함유한 삼다수, 평창수, 퓨어생수, 천년동안, 마신다 에서부터 자스페, 휘오, 디아망, 디자인시에나워터, 파나블루 슈어라는 제품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상품들은 각기 해양심층수, 알프스 빙하, 노르웨이 피요르드 빙하를 녹인 물, 화산암반 대수층 지하수 등의 지역적 차별성, 희소성을 무기로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원산지와 성분을 내세우며 자신의 제품이 몸에 좋다는 기능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정말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각 상품이 가지는 고급스러움, 그리고 상품 간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라는 소비자의 예민함이라는 능력여부이다. 티난트(Tynant)라는 상품에 이르르면 과연 이게 대량생산되는 물병인지 예술작품인지 구별이 힘들 정도가 된다. “우리는 한 병의 물을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귀하의 품격에 어울리는 이미지, 그리고 우리를 알아볼 수 있는 감각입니다.” 라는 카피가 어울릴법한 상황이다. 이들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의 미각, 촉각 등의 기능적 감각이나 건강이라는 결과가 아니다. 기호에 대한 학습된 정서적 예민함이다. 그 예민함에 대한 고찰을 작가는 사진매체를 통해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밖에도 작가는 피망과 파프리카, 브로콜리와 콜리플라워, 오렌지와 레몬 등의 상품을 통해 이들 스스로가 가진 물성-맛, 영양소, 구성성분, 생장모습-을 통해서가 아닌, 색을 통해 규정되는 우리의 인식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며 지각과정에 대한 재고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이들 식물은 우리의 머리속에서는 분명히 다른 객체로서 인식되고 있다. 각자 다른 이름의 상 품으로 팔리고 있으며 세간에서 이야기되는 장단점을 파악해 이들을 소비한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색 이외의 어떤 요소도 이들을 구별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단지 알록달록한 파프리카와 녹색의 피망, 녹색 브로콜리와 흰색 콜리플라워, 오렌지 색 오렌지와 레몬색 레몬이라는 기묘한 예민함에 의해 절대적으로 인식되고 분류되어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상품을 소비하는데 사용가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오늘이다. 우리는 기능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한다. 사람들 은 상품의 도구적 기능과 유용성에 끌려 지갑을 열지 않는다. 실제로 미네랄워터의 해양심층수의 무기성분이, 알프스의 빙하에 섞여있는 영양성분이 우리의 몸을 눈에 띄게 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굉장히 고농도로 농축된 약을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명확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시장이 소비자가 원산지의 차이, 성분의 차이, 그 리고 가격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민감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희소성이 발생된다. 내가 이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다는. 실제의 효능이 아닌 차별성의 기호를 소유한다는 감각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플루서(Vilem Flusser)는 <피상성 예찬>에서 오늘날의 세상을 다툼(datum)이 아닌 팍툼(factum), 즉 주어진 것에서 만 들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이에 인간은 주체에서 기획으로 변화한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해석을 넘어 세상의 제작이 라는 지점이다. 진짜던 가짜던, 진실인가 거짓인가이던, 원본과 복제 사이에서던 이제 맞다 틀리다의 태도를 전적으로 고수 하는 시기는 지났다. 물질과 비물질, 원자와 비트의 존재를 모두 알고 그 사이에서 공진하는 나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이 중 요하다. 동굴 안 그림자라는 플라톤주의적 이데아의 틀에서의 주체(subject)보다는 가상과 현실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 그 상황과 그 현실에 맞는 조합을 통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기획(project)으로서의 나’ 라는 존재가 오늘날의 우리인 것 이다. 이제 세상은 날것으로 존재하면서 전달되지 않는다. 기획되어 전달되며 그 내용을 기획하여 받아들인다. 작가는 이를 인지하고 이러한 오늘날의 현실을 작품을 통해 기획하여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브로콜리와 컬리플라워, 바나나, 오렌지, 콜라, 생수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각각의 상품들을 구별할 수 있는 표피적 기호들을 흐린 혼란스러운 이미지를 관람자들에게 건넨다. 각자의 상품은 각자가 가진 성질을 계량된 객관적 지표를 통해 혹은 그 존재 차제로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강조할 부분은 강화시키거나 약한 부분은 제거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가공의 기호가 전달된다. 작가는 이러한 기호들을 비교하고 우위를 가리며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예민함이 시대 의 미덕으로 주입되고 있다고 보았다. 사물에 대한 기호가 무심결에 주입되고 받아들여지는 일련의 인식과정을 ‘현대’예술 을 규정하고 대표하는 방식, 낯설게 하기를 통해 오늘날의 기획된 세계에 대한 지각을 재고할 수 있도록 건네고 있다. 유의미화와 강의미화.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 비교해 너무나 커지고 너무나 많은 내용들이 떠돌고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세상이니만큼 어떠한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힘들어졌다. 결국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이득이 될 만한 것을 골라내어 각자에 맞게 의미화하여 전달하거나 혹은 그 의미를 변형하여 강화 한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처럼 되었다. 이런 가공된 콘텐츠중에서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고르 고 비틀어 자신에게 맞게 받아들인다. 오늘날의 너무 다양하고 풍부하기에 혼란스러운 정보 사회를 효과적으로 조망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이러한 가공의 구도와 과정, 태도를 인식해야 한다는 지점이다. 생 산-소비 시스템 안에서의 우리의 좌표 말이다. 이 자각이 흐리다면 자극적이고 강력한 입장쪽으로 전도당해 세상의 일부분 만을 전부라 여기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소비자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