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vidual

2023.5.1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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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us Lupertz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üpertz, 1941년 4월 25일 출생)는 독일의 화가, 조각가, 그래픽 아티스트, 작가다.그는 또한 잡지를 발행하고 재즈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는 독일의 가장 유명한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주체는 외설적인 힘과 고대의 기념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뤼퍼츠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원형적 진술로 대표 대상을 포착할 것을 주장한다. 그의 예술 작품은 신표현주의와 결부되어 있다. 괴짜로 유명한 독일 언론은 그를 '화가의 왕자'로 묘사했다.

Lüpertz는 1960년경에 그의 첫 그림을 만들었다. 젊은 뤼퍼츠는 당대의 지배적인 추상적 경향과는 대조적으로 단순한 표현 모티브를 표현적으로 디자인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종종 기념비적인 형식의 표현으로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림에서 모순된 모티브를 결합했다. 뚜렷한 애매모호한 성격으로 그는 현대성에 대한 의구심을 자신의 그림 구조에 접목시켜 당시 압도적 추상화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했다. 1962년 그는 베를린에서 "디티람빅 페인팅"을 개발했고 미키 마우스 시리즈를 시작했고 1년 후 도널드 덕 시리즈를 시작했다.

1964년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ch)에서 따온 용어인 '디티람바흐 회화(Dithyrambic Pictures)' 전시회를 열었다. 이 그림에서 뤼페르츠는 객관성과 추상성의 대립을 합성으로 결합했다. 뤼퍼츠는 모든 것이 종속되는 연속적인 리듬에 의해 형성된 그림 같은 우주를 본다. 그는 1966년에 "Dithyrambic Manifesto"를 발표했고, 1968년에 "20세기의 은혜"라는 제목의 두 번째 선언문을 발표했다.

1969년부터 1977년까지 그는 주로 독일 모티브, 즉 철모, 삽, 깃발 또는 기념비적인 뿔 같은 상징적인 물건을 큰 형식으로 그렸다. 이 그림들은 흙빛으로 그려졌고 제3제국의 불행한 기억들이 환기되는, 관리되지 않는 독일 국민병로를 테마로 삼았다. 이 단계는 1950년대의 추상화를 바탕으로 1977년부터 1984년까지 또 다른 단계가 뒤따랐다. 이 시기의 그의 그림은 거의 완전히 동기가 없고, 표면과 볼륨이 형성되는 형태의 연극과 그림 같은 표면의 풍성함이 결실 있게 사용된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뤼페르츠는 장바티스트 카밀 코롯이나 니콜라스 푸신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재해석하는데 전념했다. 미술사학자 시그프리드 고흐르에 따르면 뤼페르츠가 푸신을 호출할 때 이미지 본체를 위한 새로운 리듬을 찾거나, 푸신이 말한 대로 탁자를 찾는다는 뜻인데, 이 탁자는 비로소 내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리얼리즘이 아니라 엄격한 인공성이 이 전략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 중에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만들어진 "Men without woman-fithout woman - Parsifal" 시리즈가 있다. 이 광범위한 시리즈에서 뤼페르츠는 종종 우는 것으로 묘사되는 정면 남성 얼굴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고수했다. 파르시팔은 리차드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의 영웅을 일컫는 말인데, 주제는 스튜디오에 있는 화가의 외로움과 연관될 수 있다.

1997년부터는 산수화를 시작했는데, 이는 전작과 대비되고 덧없는 구성이 특징이다. 1999년에는 사이클 바니타스를 만들었고, 이듬해에는 사이클 베스페르를 만들었다. 2001년에 Lüpertz는 베를린에서 새로운 연방 찬스텔러리의 사기꾼을 위한 벽화 The Six Weatures를 만들었다. 단색화에서는 색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뤼페르츠 영감의 주요 원천은 세사레 리파(Cesare Ripa)에 의한 아이코놀로지아(Iconologia)로, 통치자의 미덕의 색채를 할당하는 고대의 우상학적 개념을 그렸기 때문이다.

 

 

Georg Baselitz

게오르크 바젤리츠는 독일 출신의 화가, 판화가, 조각가이다. 한스 게오르크 케른은 고향 도이치바젤리츠에 대한 애정을 담아 게오르크 바젤리츠라는 필명을 지었다.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 거꾸로 뒤집힌 그림을 그렸고, 추한 이미지를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2004년 일본 제국상 다카마쓰노미야 전하기념 세계문화상을 받았다.

본명은 한스 게오르크 케른으로 그는 1956년에 서독으로 이주했고, 고향 도이치바젤리츠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담아 게오르크 바젤리츠라는 필명을 지었다. 바젤리츠는 1963년에 서독의 베르너운트카츠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전시회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공공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두 작품이 경찰 당국에 의해 압수당했는데, 그중 하나가 수음을 하는 소년을 그린 <하수구 아래에서의 진한 밤>(1962~1963)이다.

1965년에 바젤리츠는 피렌체에서 6개월을 보냈다(그 후에도 그는 이탈리아를 여러 번 방문했다). 그가 거꾸로 뒤집힌 사람들과 사물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아카데미적인 미술을 비웃는 듯한 뒤집힌 모습의 이미지들은 관습에 대한 부정이자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탈리아를 처음으로 여행한 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인 1983년에 그린 작품 <애도>에서 알 수 있듯이, 바젤리츠는 이 주제를 계속 탐구했다.

그는 "리얼리티는 그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 자체이다"라고 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어려운 출발을 한 바젤리츠는 착실하게 명성을 쌓아나갔다. 1975년에 그는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1980년에는 독일의 대표 미술가로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1995년에는 미국에서 대규모 회고전의 개최를 제의받아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1997년 이탈리아에서 바젤리츠의 작품에 관한 개괄서가 출판되었다. 2004년에는 일본의 제국상인 다카마쓰노미야 전하기념 세계문화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런던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회고전'을 열어주었다.

『로열아카데미 매거진』의 질 로이드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바젤리츠는 놀랍고 충격적이며 심지어는 추하기까지 한 이미지들을 매우 다정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할 줄 아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다."

"미술가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 미술가의 사회적 역할은 반사회적인 것이다."

 

 

이수경

1963  서울 출생

198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석사(1989)

 

이수경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수여하였다. 졸업 후, 프랑스 니스에서 Villa Arson Residency Program에 참여하였고 뉴욕 브롱스미술관과 Apex Art, 한국 쌈지스튜디오와 경기창작센터에서 레지던시를 하였다. 이수경은 조각, 설치, 영상, 회화, 드로잉, 퍼포먼스 등의 작품을 통해 전통과 현대, 동양성 및 미술을 통한 치유의 기능을 제시한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깨어지고 버려진 도자기 파편들로 서로 다른 도자기에서 나온 조각들을 조합해 기존의 전형적인 도자기의 형태가 아닌, 작가에 의해 새롭게 변형된 모습의 도자기로 만들어 낸다.

 

“제 작품이 생각해보면 참 ‘한 많은’ 애들이에요(웃음). 원래는 애지중지 곱게 만들어졌다가 아주 작은 흠 하나 때문에 가차 없이 깨뜨려 폐기되어 버렸으니 말이에요.” 그의 말처럼, 이수경은 도자기 공방에서 폐기된 조각들을 주어와 퍼즐 맞추듯 붙여내 아름다운 조형물을 만든다. 그래서 그의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바구니마다 가득 담긴 깨진 도자기 파편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일견 여느 도예가의 공방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나, 정작 공방에서 깨진 조각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지 않은가. 이수경은 도자기 파편들의 짝을 맞춘 후 그 틈새를 접착성이 좋은 플라스틱의 일종인 ‘에폭시’로 메운다. 이어서 옻칠과 같은, 금분 섞인 ‘카슈’를 칠하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 불상에 사용되는 금박을 두 세 번 정도 덧입힌다. 그렇게 버려진 존재들을 아름답게 ‘재탄생’ 시키기 위해 하나하나 정성스레 매만지다 보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길게는 4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동글동글한 이 애들을 만지고 긁어내고 닦아내고 안아주다 보면 완전히 나와 밀착되는 느낌이 들어요. 정이 듬뿍 드는 거죠. 마치 하나하나 아기들 같아요. 신기하게도 계속 다른 모양과 다른 성격, 다른 개성의 아이들이 탄생합니다.”

이수경은 2005년부터 부적이나 불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경면주사(鏡面朱砂)’로 드로잉을 하고 있다. 작업실 한쪽 구석에 걸려 있는 아직 완성이 안된 커다란 [경면주사 드로잉]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여기 좀 들여다보세요. 재미있고 웃긴 이미지들이 많아요.” 자신의 작품을 두고 서슴없이 ‘웃기다’라고 표현하는 작가의 손가락을 따라 화면을 가까이 들여다 봤다. 하얀 한지 위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 무늬부터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괴기스럽기도 한 초자연적인 형상들이 생동감 넘치게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다양한 미술 재료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경면주사로 그림을 그릴까. 우연한 기회에 처음 경면주사를 접했던 이수경은 그것이 불화의 재료로 쓰이듯 어떤 ‘정화’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는 더욱 끌리게 됐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작품 제작 과정은 하나의 명상 과정과 같다. 그는 바닥에 종이를 펼쳐 놓고 무릎 꿇고 앉은 다음, 제일 밑에서부터 형상들을 그려가기 시작한다. 아이디어 스케치 같은 것은 필요 없이 그저 손이 가는 데로 집중해서 그려가면 어느 새 화면이 올망졸망한 형상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렇게 매번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내내 쪼그린 자세로 그림을 그린 탓에 목과 허리가 비뚤어지고, 눈도 많이 나빠졌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내면으로 몰입할 수 있는 과정이 그는 너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하나의 통합된 상태가 되는 것이야말로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리는 이미지들, 그것은 결국 내가 기억하는 세상의 일부인 것 같아요. 삶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우리는 엄청난 이미지 홍수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 중에서도 내 기억 속에 소화되지 못한 것들이 덩어리로 남아서 그림으로 풀어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다면 내 드로잉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찌개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갖가지 재료들이 섞여 끓고 있는 기억의 통처럼 말이에요.”

병풍 형태의 설치작품 [이동식 사원]에서도 특유의 재치가 번뜩인다. 불화에서 부처나 보살은 흔히 앞모습만 볼 수 있는데, 이수경은 뒷모습을 상상하여 병풍에 그렸다. 이 병풍은 어디로든 옮겨가며 명상을 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번역된 도자기]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다. 도자기 파편을 이어 붙일 때 생긴 금간 자국을 보면서 이수경이 한 생각은 이렇단다. “이 ‘금’을 그대로 둘 순 없고 어떡하지? 아 그럼 ‘금(金)’으로 메우면 되지!” “유쾌함이요? 글쎄요. 작업에 대한 적절한 온도를 맞춰주기 위한 것 아닐까요. 그냥 울다가 웃는 것 같아요.”